|생각| 노무현대통령 49재 : 나는 아주 작은 할일이라도 남아있다

○ 그날 아침

 

늦잠을 잔다. 원래는 일찍 일어날 계획이었다. 저녁 때 집에 손님이 오시기로 되어있었기에. 모처럼 집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해야한다. 그런데 몸이 일으켜지질 않는다. 이불 속에서 몸을 부비적대며, 아침 여섯시만 되면 저절로 켜지는 안방의 배불뚝이 지직이 티비가 들려주는 소리만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

 

좀처럼 늦잠을 자지 않는 남편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며 날 깨울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방으로 들어온다. 오, 날 깨우지 말아다오. "5분만!"을 외치려 마음 속으로 준비중인데 남편이 한마디 툭 내뱉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

이게 뭔 소리? 꿈인가 생시인가, 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모양이었다. 늘어진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가 화질 좋은 티비 앞에 자리잡고 앉는다. 정말, 뭔가 사단이 난 모양이었다. 죽음, 자살, 서거란 말이 뒤섞이고 병원, 자택, 돌산 화면이 겹쳐진다.

 


○ 나의 그

 

스무살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많은 이들은 더이상, 소위 '민쯩검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유흥업소를 드나들며 즐길 수 있다는 데에서 그걸 실감하는 것 같다. 난, 첫 선거 때 나도 이 사회에 조그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녀석이란 점에서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던 것 같다. 물론 직장인이 되어서 월급쟁이 유리지갑 속 세금을 토해내면서는 아주 절감을 했지마는.

 

그는 내가 첫 선거를 하게 된, 대통령 선거의 후보자였다. 그의 노랑빛깔 돌풍은 거셌고, 멋졌다. 당연히 그가 되리라 믿었다. 난, 그런 분위기를 타고 '사표방지심리'를 버린 채 가장 나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정책을 많이 냈던 민주노동당 후보를 찍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을 흔든건 단일후보결정을 철회한 그놈이었다. 그놈이 그런 식으로 배신을 때리고 나니, 그가 당선될 수 있을지 눈 앞이 흐릿해졌다. 결국 그에게 내 인생 첫 국가투표의 한표를 던졌다. 그는 당선되었다.

 

그놈의 배신 덕에 그가 지지자들을 더 결집시켰다는 분석, 나에게 있어서는 딱 맞는 말이다. 안타깝게 져버려야했던 민주노동당 후보에게는, 당선 물망에 오른다는 사람들 중 진심으로 찍어주고 싶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던 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표를 던졌다.  사표가 되든지 말든지 하던 심정과 지난 번 대선의 미안함을 담아서.

 


○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서거 후 국민장이 치러지던 때였고, 지금 아니 오늘이 사십구재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왜 이렇게 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손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투표를 통해 지지의사를 밝혔으나, 그 이후로는 딱히 지지자로서 행동한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내 가치관과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던 때 느낀 안타까움이 아직도 얼마간 남아서일까. 존경하는 어른 한분 찾기 힘든 세상에, 얼마간이나마 존경심을 품었던 이가 이렇게 허망히 가버린 것에 대한 속상함일까. 참말 모를 일이다.

 

그의 말을, 그의 행동을, 그의 선택을 다시 보는 수많은 컨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가 원했든 그렇지 않든, 결국 죽음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힘 실어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에 마음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그의 뜻이 이렇게나마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에 전달되고 남는다는 것이, 하늘에서나마 조금은 위안이 될까.

 

결국 이제는 모두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는 깨어있는 국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그의 말을 되새겨본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가족들을 위해 짧은 기도를 드려본다. 아직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아주 작은 할 일이라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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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 2009/07/10 19:05 | 철들어 - 일상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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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땜통의 유치찬란 Ver.. at 2009/07/11 00:20

제목 : [노무현 49재를 보내며] 이제는 슬퍼하지 말고 깨..
오늘이 왔네요.. 벌써 49일이 지나 49재가 치뤄졌습니다. 보내야 하는 이들은 여전히 안타깝고도 슬프고, 화가 나네요. 하지만, 이젠 정말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노무현,마지막인터뷰]라는 책을 어제 받아서 내내 읽고 있습니다. 아직 다 읽지 못해 이후 서평으로 다시한번 글을 써야 겠지만, 한장 한장 읽어가며 진정으로 노통이 원했던 대한민국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노통은 권력의 정점을 대통령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통령보다 더 큰 권력으로 시민......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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